영화후기 / / 2022. 12. 3. 09:47

영화 택시운전사-실화라서 더 가슴 아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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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는 기분 좋은 첫 장면이 암시하듯이 우리의 비극적인 현실을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잘 표현해낸 영화다. 만약 이 당시에 이 택시기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때의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이 택시를 타고 외국인 기자가 우리의 현실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

택시기사는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대한민국 광주의 참상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간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2017년 개봉해 1218만 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1위에 올랐다. 송강호, 유해진, 류준열, 토마스 크레치만 등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 그런지 택시기사라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켠이 아팠다. 그리고 그날의 아픔이 전해지는 듯했다. 그건 그런 게 아니었다. 극장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잊고 싶어 하는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아직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불을 질렀는지 명확하지 않았고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일부 세력은 왜곡된 정보를 퍼뜨려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모욕했다. 그것은 정말 개탄스럽다. 하루빨리 진상이 밝혀지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길 바란다. 아울러 이런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법의 제정과 개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관람객 9.20점, 네티즌 9.12점으로 손익분기점 500만 점 돌파, 최종 점수 1200만 점 돌파에 성공했다. 1980년대 군사독재를 배경으로 한 언론탄압, 정치공작, 민주화운동 세력 간 분열 등 역사적 사건에서 개인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조명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의 슬픈 과거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0년 5월 18일 당일 오전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학생 100여 명이 모여 시국성토대회를 열었다. 이날 시위대는 "비상계엄 해제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같은 구호를 외치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경찰은 이를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을 쏘며 진압했고, 여기에 맞서 시위대도 돌멩이를 던지며 맞섰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대규모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진행되던 시위는 점심 무렵 시내 중심가로 이동하면서 점차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금남로 일대 도로변에 집결하기 시작했고, 일부 흥분한 청년들은 차량을 부수고 파출소를 습격하기도 했다. 이후 공수부대원들이 투입되면서 사태는 누구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점점 치달았다. 계엄군은 곤봉과 대검으로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살상했고, 심지어 임산부나 여학생에게도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수백 명의 부상자들은 병원 응급실조차 찾지 못한 채 거리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또한 건물 곳곳마다 시신이 널려 있었고, 당시의 상황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무엇보다도 도시 밖 외곽도로망마저 철저히 차단된 상태여서 외부로부터 고립된 광주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날의 진실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하여 참으로 답답하다.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되지 않은 송강호

영화계 최고의 배우 송강호가 단독으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라이벌은 나 자신이다"라고 말했고, 그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슬럼프에 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끊임없는 자기 관리와 성실함으로 극복하고 지금도 한국 국민배우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배우 송강호에 대해 그렇게 열광할까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는 베테랑 배우 송강호에 대해 알아보겠다. 먼저, 배우 송강호는 1967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와 함께 자랐다고 한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는데 우연히 극단 연우무대 단원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그리고 오디션을 무작정 보러 갔는데 다행히 합격해서 연극 무대에 섰다고 한다. 그런 계기로 데뷔한 그는 1991년 임순례 감독의 작품 '돼지가 떨어진 날'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어 1993년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 주인공으로 발탁돼 충무로에 입성했고, 1994년 박종원 감독의 '영원한 제국'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1997년 이창동 감독의 '녹색 생선'에서 한석규와 호흡을 맞췄고, 그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0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에 북한군으로 출연해 흥행에 성공했고, 2002년에는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으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형사단으로 분해되어 백상 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고, 2006년 이준익 감독의 '괴물'이 배우 1,000만 명을 기록하였다. 2007년 강우석 감독의 '우아한 세상'은 가족에게 무한히 약한 아버지의 캐릭터를 실감나게 표현했고, 2008년에는 최동훈 감독의 '좋다 나쁘다 이상하다'가 만주 야전 마술단의 보스를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2009년에는 홍상수의 '박쥐' 신부 역으로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임상수 감독의 '하녀'의 주인인 남자 훈 역을 맡아 충무로에서도 놀랄정도로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2012년 류승완 감독의 '설국열차'의 열차보안 디자이너 남궁민수 역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했고, 윤제균 감독의 '변호사' 인권 역으로 제51회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과 제35회 청룡영화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김한민 감독의 《비밀수사》로 부산 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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